나기호
[ 羅基瑚 ]
- 요약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일제강점기에 중국 상하이에서 항일독립운동 청년단체 신한청년당에 입당하였고, 안창호의 지시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출생-사망 | 1895 ~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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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안정 |
자 | 중기 |
호 | 홍연 |
별칭 | 초명 웅린 |
활동분야 | 독립운동·교육 |
출생지 | 경기 가평 |
본관은 안정(安定), 초명(初名)은 웅린(雄麟)이며, 호는 홍연(弘淵), 자는 중기(重器)이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나 가평공립보통학교(지금의 가평초등학교)를 거쳐 1917년 서울 경신고등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에 입당하였고, 1919년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던 안창호(安昌浩)의 지시로 러시아·중국·미국·프랑스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마운트허먼고등학교를 마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문학사·이학사·화공학사 학위를 받은 뒤 조교수로 재직하였다. 17년 만에 귀국한 뒤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은둔생활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미군정 하에서 상공부 차관과 교통부 차관을 지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하여 연세대학교에서 교무처장과 상경대학 학장 등을 지냈다. 정년 퇴임한 뒤에는 모교인 경신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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