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탕
[ 李宕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월성군(月城君) 이천(李薦)의 8대손으로 동몽교관, 강릉참봉, 직장, 평시서령, 사직서령 등의 벼슬을 지냈다.
출생-사망 | 1507 ~ 1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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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오재(悟齋), 자는 방옹(放翁)이다. 1507년(중종 1) 10월 경주 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의 파조(派祖)인 월성군 이천의 8대손으로 태어났다. 동몽교관, 강릉참봉, 직장, 평시서령, 사직서령 등의 벼슬을 지내다 낙향하여 은거 생활을 하였다. 슬하에 세 아들 이정함, 이정암, 이정형을 두었다.
1584년(선조 17) 8월에 죽었으며 세 아들이 공신의 반열에 오름에 따라 그에 힘입어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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