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경

정운경

[ 鄭云敬 ]

요약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331년 상주목사록(尙州牧司錄)에 제수되고 전교교감(典校校勘),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삼사도사(三司都事)를 역임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359년 형부상서에 올랐다.
출생-사망 1305 ~ 1366
본관 봉화(奉化)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봉화(奉化)로 고려 중엽에 호장을 지낸 공미(公美)의 증손이자 조선의 개국공신 도전(道傳)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영주향교(榮州鄕校)와 복주(福州, 안동)향교에서 공부하였다. 한림(翰林)을 지낸 외삼촌을 따라 개경에 올라와 이곡(李穀) 등과 교유하며 수학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사마시에, 1330년 동진사(同進士)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상주목사록(尙州牧司錄)에 제수되었으며 전교교감(典校校勘),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삼사도사(三司都事)를 역임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밀성군지사(密城郡知事)에 올랐고 이듬해 복주목판관(福州牧判官)으로서 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해 명성을 얻었다.

1346년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후 양광도·교주도 안찰사(按察使)를 거쳐 1352년 전법총랑(典法摠郞)에 올랐다. 1356년에는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올라 무반의 인사를 관장했으며, 강릉도(江陵道)·삭방도(朔方道)의 존무사(存撫使)와 지형부사를 거쳐 1359년(공민왕 8)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올랐다.

1363년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고 영주에 돌아와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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