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응

홍응

[ 洪應 ]

요약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463년(세조 9) 도승지로서 《명황계감(明皇誡鑑)》을 번역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479년 우의정에, 1485년 좌의정에 올랐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다.
출생-사망 1428 ~ 1492
본관 남양(南陽)
응지(應之)
휴휴당(休休堂)
별칭 충정(忠貞)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이다. 한성부윤 심(深)의 아들이다.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정언(左正言)을 거쳐 사가독서·집현전교리·필선(弼善)·보덕을 역임했다. 1463년(세조 9) 도승지로서 영응대군(永應大君)과 함께 《명황계감(明皇誡鑑)》을 번역했다.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고, 1468년(예종 즉위)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올랐다.

이후 지충주부사에 올라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올라 익성부원군(益城附院君)에 진봉되었다. 1479년 우의정이 되고 1485년 좌의정에 올랐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으며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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