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진

한명진

[ 韓明溍 ]

요약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형 한명회와 계유정난에서 공을 세웠다.
한명진묘

한명진묘

출생-사망 1426 ~ 1454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시호는 양도(襄悼)였으나 예종의 시호와 같아 후에 이양(夷襄)으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한기(韓起), 어머니는 세자좌문학(世子左文學)을 지낸 이적(李逖)의 딸이다. 권제(權踶)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언(堰)을 낳았다. 1453년(단종 원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뒤 형 한명회(韓明澮)와 함께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癸酉靖難)에서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졌다. 1454년 전구서승(典廐署丞)으로 재임중에 사망하자 가정대부 병조참판(嘉靖大夫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의 청주 한씨(淸州韓氏) 묘역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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