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성

한응성

[ 韓應聖 ]

요약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스승 조헌이 옥천에서 창의할 때 합류하였다.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영규가 이끄는 승병이 힘을 합쳐 청주를 탈환할 때 공을 세웠으나 금산전투에서 700의사와 함께 순국하였다.
출생-사망 ? ~ 1592
본관 청주(淸州)
경기(景期)
구와(龜窩)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경기(景期)이고, 호는 구와(龜窩)이다. 전라도 순창(淳昌)에서 태어났다. 용양위대호군(龍揚衛大護軍) 축(軸)의 아들이다. 조헌(趙憲)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몸이 날래어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를 즐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스승 조헌이 충청도 옥천(沃川)에서 격문을 돌리고 거의했을 때 하인 수십 명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이어 조헌이 1,7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승병장 영규(靈圭)의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淸州)를 탈환할 때 공을 세웠다. 다시 금산(錦山)으로 향하여 전라도로 들어오려는 왜군을 막으려 하였으나 충청도순찰사 윤선각(尹先覺)이 조헌에게 공을 빼앗길까 염려하여 방해를 한 탓에 대부분의 의병이 해산하고 700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때 그는 끝까지 남아 금산전투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왜군과 싸우다가 조헌 등 700인과 함께 순국하였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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