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보

한윤보

[ 韓潤輔 ]

요약 조선 중기의 역관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예조판서 윤근수와 공조판서 한응인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갔을 때 통역관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에도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능란한 말솜씨로 국난극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출생-사망 ?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해 7월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와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갔을 때 통역관으로 동행하였다. 이어 8월 이덕형(李德馨)이 청원사(請援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을 때도 동행하였다. 당시 평양성탈환전투에서 패한 명나라 장수 조승훈(祖承訓)이 귀국하여 조선군이 왜군에 투항하고 식량을 조달하지 않았기에 패했다는 등의 핑계를 대어 양국 관계가 불편해졌다. 그러자 명나라로 파견되어 능란한 말솜씨와 임기응변으로 무마시키고 돌아왔다.

1593년(선조 26) 2월 접반사 한응인(韓應寅)·이덕형(李德馨)의 통역관이 되어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만나 왜적을 속히 치기를 청하였고, 8월에는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의 통역관으로 이여송을 만나 회담하였다. 1598년(선조 31)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차비역관(差備譯官)이 되어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능란한 말솜씨로 국난극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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