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각

정언각

[ 鄭彦慤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547년 부제학으로 재임 중 양재역에서 문정왕후와 이기 등을 비난하는 벽서를 가져와 정미사화를 일으켰다. 권신 윤원형에 빌붙어 세도를 부리며 많은 사람을 모함하여 해를 입혔다.
출생-사망 1498 ~ 1556
본관 해주(海州)
근부(謹夫)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근부(謹夫)이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한 후 1533년(중종 2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박사·정언·지평·장령·교리·응교·사간·사옹원정·검상·사인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47년(명종 2) 부제학으로 재임 중 경기도 과천 양재역(良才驛)에서 문정왕후(文定王后)와 권신 이기(李芑) 등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서를 발견하고 왕에게 바침으로써 정미사화(丁未士禍)를 일으켰다.

이로써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이 정권을 잡게 되자 그에 빌붙어 권세를 누렸다. 이어 동부승지·승정원도승지·경기관찰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으며, 1551년(명종 6)에는 전라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남의 노비를 빼앗았다가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복직하여 1552년 동지중추부사로서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경상도관찰사·한성부좌윤 등을 거쳐 1556년 경기관찰사로 재임할 때 낙마하여 말굽에 밟혀 죽었다. 성품이 음흉하고 악독하여 관직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모함하여 해를 입혔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죽게 한 말을 의마(義馬)라고 불렀다. 또한 당시 세상에서는 윤원형과 이기를 2흉(凶)이라 하고, 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정언각(鄭彦慤)을 3간(奸)이라 불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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