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성

정사성

[ 鄭士誠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어용을 보존한 공으로 내섬시주부에 임명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더불어 화왕산성에서 왜군과 싸웠다.
출생-사망 1545 ~ 1607
본관 청주(淸州)
자명(子明)
지헌(芝軒)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역학계몽질의(易學啓蒙質疑)》《임진일록(壬辰日錄》《지헌문집》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자명(子明)이고, 호는 지헌(芝軒)이다. 경상도 안동(安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김언기(金彦璣)·구봉령(具鳳齡)에게 수학하였고, 1561년(명종 16) 이후에는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덕홍(李德弘)·유운룡(柳雲龍)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논하였다. 1587년 태릉참봉을 거쳐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이 위태해지자 어용(御容)을 짊어지고 단양(丹陽)과 제천(堤川) 사이에서 왜적을 피하였다. 그 공으로 내섬시주부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양구현감(楊口縣監)으로 부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창녕(昌寧)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왜적과 싸웠다. 저서로 《역학계몽질의(易學啓蒙質疑)》《임진일록(壬辰日錄》 등이 있으며, 문집인 《지헌문집》이 전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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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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