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렴

정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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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선에 능통했고 천문·지리·의학·복서뿐 아니라 어학·그림·음악 등 모든 방면에 두루 뛰어났다.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기인으로 꼽힌다.
출생-사망 1506 ~ 1549
본관 온양(溫陽)
사결(士潔)
북창(北窓)
국적 한국
활동분야 철학
주요저서 《북창비결》《용호비결(龍虎泌訣)》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자는 사결(士潔)이고, 호는 북창(北窓)이다. 좌의정 순붕(順鵬)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 진사시에 합격하여 장악원주부를 거쳐 관상감(觀象監)·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역임하고 포천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아버지가 윤원형(尹元衡)·이기(李芑) 등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이고 귀양보내자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였다.

그는 성리학뿐 아니라 천문·지리·의학·복서(卜筮)와 불교·도교에도 정통했고 그림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토정 이지함(李之菡)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기인으로 꼽힌다.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4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에 의하면 "정렴은 신묘하게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였다. 일찍이 중국에 갔을 때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그를 찾아와 《주역(周易)》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그는 즉시 유구국의 말로 가르쳐 주었다. 관(館)에 있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서 찾아오자 각기 그 나라의 언어로써 대화를 나누니, 그를 천인(天人)이라고 칭찬하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라고 하여 여러 나라 언어에도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저서에 《북창비결》《용호비결(龍虎泌訣)》 등이 있고, 문집인 《북창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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