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겸진

하겸진

[ 河謙鎭 ]

요약 한국의 유학자이다. 1919년에는 파리장서사건에, 1926년에는 제2차 유림단사건에 각각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나라와 민족의 얼을 일깨우기 위해 《동유학안》과 《해동명장열전》 등 많은 명저를 저술하였다.
출생-사망 1870 ~ 1946
본관 진주(晋州)
숙형(叔亨)
회봉(晦峯)·외재(畏齋)
국적 한국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경상남도 진주시
주요저서 《동유학안(東儒學案)》《해동명장열전(海東名將列傳)》《동시화(東詩話)》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자는 숙형(叔亨)이고, 호는 회봉(晦峯)·외재(畏齋)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조부에게 사략(史略)을 배웠으며, 13세 때에 4서5경을 익혔고, 24세에는 성리학을 논하기 시작하였다. 27세 때 거창(居昌)의 다전(茶田)으로 가서 곽종석(郭鍾錫)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허유(許愈)에게서 식견을 넓혔으며, 김도화(金道和)·이만도(李晩燾)·이승희(李承熙)·장석영(張錫英)·이두훈(李斗勳)·이종기(李種杞)·김진호(金鎭祜) 등 당시 영남의 석학들과 널리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였다.

1919년 스승인 곽종석과 김창숙(金昌淑) 등이 주동이 되어 전국유림대표 137인의 이름으로 프랑스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탄원서(獨立歎願書)를 보낸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참여하였다가 수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1926년 봄에는 다시 제2차 유림단사건(儒林團事件)에 연루되어 대구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일제강점기 나라와 민족의 얼을 일깨우는 저술에 힘썼으며, 우리나라 선현들의 학문과 연원을 체계 있게 정리한 《동유학안(東儒學案)》 30권과 역대 명장들의 전기인 《해동명장열전(海東名將列傳)》을 저술하였다. 만년에는 우리나라 시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동시화(東詩話)》를 저술하였다. 그 밖의 저술로는 《주어절요(朱語節要)》 10권과 《도문작해》 6권 및 《명사강목 明史綱目》 18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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