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겸락

하겸락

[ 河兼洛 ]

요약 조선 말기의 무신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순무사중군 이용희의 종사관이 되어 프랑스함대를 퇴각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1870년 신도진절제사로 있을 때는 국경을 침범하여 고기잡는 중국어선을 나포하여 어업권을 보호하였다.
출생-사망 1825 ~ 1904
본관 진주(晋州)
우석(禹碩)
사헌(思軒)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이기집설(理氣輯說)》 《봉선록(奉先錄)》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자는 우석(禹碩)이고, 호는 사헌(思軒)이다. 일찍이 이우빈(李佑斌)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1853년(철종 4) 무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수문장 겸 선전관을 거쳐 훈련원주부·훈련원첨정·어영파총(御營把摠) 등을 역임하면서 직분을 다하였다.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에는 순무사중군(巡撫使中軍) 이용희(李容熙)의 종사관이 되어 강화도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프랑스 해군을 공격함으로써 프랑스함대를 퇴각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1870년 신도진절제사(薪島鎭節制使)로 재임했을 때는 국경을 침범하여 고기잡는 중국어선을 나포하는 등 우리의 어업권을 보호하였으므로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서녘 땅은 이 사람을 얻었으니, 호인(胡人)들이 감히 동쪽으로 와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1871년 강계부사(江界府使)로 있을 때는 철폐된 회재서원(晦齋書院)에 강당만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마저 철폐하려 하자 나라에 상소하여 철회시켰다. 무신이었으나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이기집설(理氣輯說)》과 《봉선록(奉先錄)》을 편찬하였다. 문집인 《사헌집》 4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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