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포스

티포스

[ Typos ]

요약 648년 콘스탄스 2세가 발표한 칙령으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둘러싼 논란을 금지시켰다.

로마 교회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이후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완전히 결합해 하나의 성(性)을 이루고 있다는 단성설(單性說, monophysitism)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양성설(兩性說)을 교의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논란이 그치지 않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재위 610~638)는 단성론자와 양성론자의 대립을 화해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양성(兩性)을 갖추고 있으나, 오직 하나의 신적 의지(意志)만을 가지고 있다는 단의설(單意說, monothelitism)을 주장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였던 (Heraclius)는 638년 단의설(單意說)에 기초한 ‘엑테시스(Ecthesis)’라는 칙령을 선포하여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통일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단의설(monothelitism)은 단성론자나 양성론자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으며, 논란은 멈추지 않고 더욱 확산되었다. 콘스탄스 2세는 교회의 이러한 갈등이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기독교 세계읱 통일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648년 ‘티포스(Typos)’라는 칙령을 선포해 단의설(單意說)에 관한 모든 토론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로마 교황 마르티노 1세(Martinus Ⅰ, 재위 649~653)는 649년 로마의 라테란(Lateran) 대성당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엑테시스(Ecthesis)’와 ‘티포스(Typos)’ 모두를 거부하고, 단의설(單意說)을 이단(異端)으로 선언하였다. 자신의 종교 정책에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한 콘스탄스 2세는 653년 교황 마르티노 1세(Martinus Ⅰ)를 사로잡아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했으며, 크리미아(Crimea)의 케르소네소스(Chersonese)로 유배하였다. 마르티노 1세(Martinus Ⅰ)는 655년 그곳에서 죽었다.

단의설(單意說)을 둘러싼 로마 교회와의 갈등은 콘스탄스 2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4세(Constantinus Ⅳ) 때에 와서야 해소되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는 680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공의회(the Third Council of Constantinople)를 소집하였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단의설(單意說)을 부정하고 양의설(兩意說)을 정통 교의로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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