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화

장지화

[ 張至和 ]

요약 조선 초의 개국공신이다.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한 공으로 개국공신 3등에 올랐으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살해되었다.
출생-사망 ? ~ 1398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전라도 흥성(興城)에서 태어났다.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성계(李成桂)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인척(姻戚)이라고 한다.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였다.

1390년(공양왕 2) 명나라에서 고려인 이초(李初)와 윤이(尹彛)가 이성계(李成桂)가 옹립한 공양왕은 종실이 아니라 이성계의 인친이라는 것과, 이성계 등이 장차 명나라를 치려 한다는 것, 그리고 고려의 재상들이 이에 반대하다가 유배되거나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자신들을 보내어 명나라에 알리도록 하였다는 것 등을 고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실이 고려에 알려지자 대규모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때 장지화는 경력(經歷)으로 있으면서 이성계의 정적인 정몽주(鄭夢周) 등을 맹렬히 탄핵하였다.

1392년(태조 1) 이성계를 추대한 공으로 개국공신 3등에 올라 흥성군(興城君)에 봉해졌다. 1395년(태조 4) 간관(諫官)으로 있을 때 조성도감(造成都監)에서 물의를 일으킨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이거인(李居仁)과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사사로이 무역하다 물의를 일으킨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정남진(鄭南晉) 등을 탄핵하였다. 1398년(태조 7) 7월 충청도관찰출척사(忠淸道觀察黜陟使)에 제수되었으나, 그해 8월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방석(芳碩)을 감싸고 종친을 모해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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