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
[ 趙晟 ]
- 요약
조선 중기의 음악이론가·학자·의원이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역학 등에도 해박하였다.
출생-사망 | 1492 ~ 1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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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평양 |
자 | 백양(伯陽) |
호 | 양심당(養心堂) |
국적 | 한국 |
활동분야 | 음악 |
주요저서 | 《양심당집》 |
본관은 평양이고 자는 백양(伯陽), 호는 양심당(養心堂)이다. 조광조(趙光祖)·조수함(趙守諴)의 문인(門人)이다. 1513년(중종 8)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벼슬은 부사과(副司果)·의영고영(義盈庫令) 등을 지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산수·천문·지리 등 여러 분야에도 정통하여 의(醫), 산(算), 율(律)의 삼학교관(三學敎官)을 역임하였다.
1551년(명종 6) 교정청(校正廳)을 설치하여 세종 때 박연(朴堧)이 만든 편종(編鐘)과 편경(編磬)을 교정할 즈음, 우참찬 안현(安玹)의 책임하에 그로 하여금 이정(釐正)하게 하였다. 또한, 거문고의 명인으로서 이득윤(李得胤)의《고금금보문견록(古今琴譜聞見錄)》과《송씨이수삼산재본금보(宋氏二水三山齋本琴譜)》에《조성보(趙晟譜)》가 전한다.
만년에는 아우 욱(昱)과 함께 외가(外家)가 있는 경기도 삭녕(朔寧:漣川·鐵原)의 옛 전장(田庄)에 서실(書室)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양평군 용문면(龍門面)의 운계서원(雲谿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시문집에《양심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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