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사당

곰사당

[ 熊神壇 ]

요약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고마나루에 있는 곰을 모신 사당이다.
곰사당

곰사당

충청남도 공주의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일대를 ‘고마나루’라고 하는데 이곳은 공주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곳으로, 2006년 12월 4일 명승 제21호로 지정되었다. 곰사당은 고마나루(곰마루) 솔밭에 자리 잡고 있는 곰을 모신 사당이며 웅신단(熊神壇) 또는 웅사당(熊祠堂)이라고도 한다. 1997년 6월 5일 공주시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고마나루와 곰사당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고마나루 북쪽에 있는 연미산 동굴에 살던 암곰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온 나무꾼을 잡아 남편으로 삼고 자식 둘을 낳았다. 어느 날 나무꾼이 동굴에서 도망쳐 강을 건너자 이를 본 암곰이 두 아이를 들어 보이며 돌아올 것을 애원했지만 나무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떠나버렸다. 암곰은 결국 두 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는데 그 후부터 강을 건너는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죽은 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자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한다.

1972년 현재의 곰사당 자리에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34cm, 폭 29cm의 돌곰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로부터 곰사당이 예전부터 존재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현재의 곰사당은 이 돌곰상을 발견한 이후 지어진 것으로, 당시 발견된 돌곰상은 현재 공주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현재 사당에 모시고 있는 것은 그 돌곰상을 본떠 만든 것이다.

곰사당이 자리한 고마나루는 흔히 곰나루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고 쓴다. 웅진은 공주의 옛 지명으로,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 공주(公州)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할 때 이용하던 교통로였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던 곳이며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던 곳으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기도 했다. 고마나루에는 곰사당 외에도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이 있었다 한다.

참조항목

웅진동

역참조항목

공주 고마나루, 곰굴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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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당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고마나루에 있는 곰을 모신 사당 공주시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충청남도 공주의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일대를 ‘고마나루’라고 하는데 이곳은 공주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곳으로, 곰사당은 곰을 모신 사당이다. 아득한 옛날 고마나루 북쪽에 있는 연미산 동굴에 살던 암곰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온 나무꾼을 잡아 남편으로 삼고 자식 둘을 낳아 살았는데 남편이 떠나버리자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금강을 다니는 배가 자주 뒤집히는 일이 일어나자 사당을 세우고 죽은 곰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1972년 현재의 곰사당 자리에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곰상이 발견되어 곰사당의 존재가 알려졌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