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천익

최천익

[ 崔天翼 ]

요약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나 아전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대과를 포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학문에 힘썼고,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여 명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출생-사망 1710 ~ 1779
진숙(晉叔)
농수(農叟)
국적 한국
활동분야 시문
주요작품 《농수고(農叟稿)》《농수집》

자는 진숙(晉叔), 호는 농수(農叟)이다. 흥해군(興海郡)의 아전이었던 준걸(俊傑)의 둘째아들로, 집안이 대대로 군리(郡吏)를 지냈다. 어려서 같은 고을 사람에게 글을 배웠는데, 매우 뛰어나 신동(神童)이라는 말을 들었다.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으나 아전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과(大科)를 포기한 후 군리로 10여 년을 지냈다. 이후 전국을 유학(遊學)하며 학문에 힘썼고, 만년에는 흥해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벽읍(僻邑)인 흥해에서 명사들이 많이 배출된 것은 그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당대의 명사인 낙론계(洛論系)의 성리학자 성대중(成大中)과 문장가 신유한(申維翰) 등과 교유하면서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고, 고금(古今)의 치란득실(治亂得失)과 관방형편(關防形便)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는데, 정조 때 병조판서가 관찰사로 천거하였으나, 신분상의 제약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시문집에 초간본《농수고(農叟稿)》1권 1책과 중간본《농수집》2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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