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업

이중업

[ 李中業 ]

요약 한국의 유학자·독립운동가이다. 을미사변 때 의병을 일으켰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규탄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으며, 파리평화회의에 참가할 것을 계획하고 를 작성하였다.
출생-사망 1863 ~ 1921
본관 진성(眞城)
광초(廣初)
기암(起巖)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주요저서 ,《대학정의(大學精義)》《양전합선(兩全合選》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자는 광초(廣初), 호는 기암(起巖)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에서 태어났다. 이황(李滉)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경술국치(庚戌國恥) 후에 단식(斷食)으로 순국한 자헌대부(資憲大夫) 승지(承旨) 만도(晩燾)이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유인식(柳寅植)·이중업(李重業)·이상룡(李相龍)·박재중(朴在重)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에 패하여 10년 동안 피신(避身) 생활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을사오적(乙巳五賊)을 규탄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으며, 1919년 고종의 인산(因山)에 영남 유생(儒生)으로서 참석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김창숙(金昌淑)·곽대연(郭大淵)·김정호(金丁鎬)·권상도(權相道) 등과 같이 3·1만세운동을 보고는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파리평화회의에 참가할 것을 계획하고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작성하였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하였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정세를 탐문하고 애국지사들을 방문하여 광복운동을 의논하였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에게서 수학하여 경학(經學)과 심학(心學)에 밝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 및 왕조의 치란(治亂)과 선유(先儒) 제현(諸賢)들의 학문 및 그 특징과 차이점 등에 대해서도 정통하였으며, 우리 나라 세가(世家)들의 보계(譜系)에도 밝았다. 저서에《기암유고(起巖遺稿)》28권 14책,《대학정의(大學精義)》《양전합선(兩全合選》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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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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