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징

이유징

[ 李幼澄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 평양으로 몽진한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이항복의 막하에서 계책을 내어 평양 탈환에 큰 공을 세웠다.
출생-사망 1562 ~ 1593
본관 전주
징원(澄源)
시호 정민(貞敏)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징원(澄源)이다. 선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성중(誠中)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축(司畜)·병조좌랑·정언 등을 지내고, 1591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평양으로 몽진하였을 때 호종(扈從)하였다. 이듬해에 의주목사(義州牧使) 겸병마절제사가 되어 장졸(將卒)을 통어(統御)하는 한편, 식구 중 요역(徭役) 대상자가 3명 이상인 경우에는 2명은 부역에서 면제하여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니 민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선조가 의주(義州)에서 명나라에 원병(援兵)을 청할 때, 이항복(李恒福)의 막하(幕下)에서 계책을 내어 평양 탈환에 큰 공을 세워 선조가 중용하려 했으나 과로로 인하여 죽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추록되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완흥군(完興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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