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겸

이유겸

[ 李有謙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들어가 싸웠고, 지방관으로 재임할 때에는 선정을 베풀고 향촌 교화에 힘써 통정대부에 올랐다.
출생-사망 1586 ~ 1663
본관 우봉(牛峯)
수익(受益)
만회(晩悔)·송탄(松灘)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우봉(牛峯)이고 자는 수익(受益)이며, 호는 만회(晩悔)·송탄(松灘)이다. 연산군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승건(承健)의 현손(玄孫)이다. 조수륜(趙守倫)의 문하(門下)에서 성혼(成渾)의 학문을 배우고, 김장생(金長生)을 사사(師事)하였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獄) 때 스승 조수륜이 연루되어 죽자, 누구도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지 않는 것을 예의를 갖추어 염습(殮襲)하고 장례를 치렀다. 폐모론(廢母論) 때는 문생(門生)들과 함께 상소하였다가 오지(奧地)로 유배당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유일학행지사(遺逸學行之士)로 천거되어 신령현감(新寧縣監)·공조좌랑·함흥판관(咸興判官)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들어가 싸웠으나 패배한 후, 형조좌랑을 거쳐 대구부사(大邱府使)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특별히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 후에는 성주목사(星州牧使)·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역경(易經)》에 조예가 있었으며, 지방관으로 재임할 때에는 고을 자제(子弟)에게《가례(家禮)》《심경(心經)》을 강론하거나 향음주의(鄕飮酒儀)를 행하고 기영회(耆英會)을 만드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남효온(南孝溫)·민순(閔純)·김정국(金正國)·기준(奇遵)·정지운(鄭之雲)·홍이상(洪履祥)·이신의(李愼儀) 등과 함께 고양팔현(高陽八賢)으로 불려졌으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官山洞)의 문봉서원(文峯書院)에 배향되었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二東面)에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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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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