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일

이숭일

[ 李嵩逸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이다. 세자익위사선마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의령현감에 제수되자, 자신의 포부를 펼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부임하여, 민폐를 혁신하고 향약의 시행과 교육 진흥에 힘썼다.
출생-사망 1631 ~ 1698
본관 재령(載寧)
응중(應中)
항재(恒齋)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성리학
주요저서 《항재문집》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자는 응중(應中)이며, 호는 항재(恒齋)이다. 인조 때의 역학자(易學者) 장흥효(張興孝)의 외손자로, 성리학자 휘일(徽逸)과 인조 때 대사헌을 지낸 현일(玄逸)의 동생이다. 소설가 이문열(李文烈)이 그의 12대손이다.

1689년(숙종 15) 세자익위사선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2년 후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를 거쳐 의령현감(宜寧縣監)에 제수되자, 자신의 포부를 펼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부임하였다. 그는 민폐를 혁신하고 향약(鄕約)의 시행과 교육 진흥에 힘써, 고을 사람들에게 '이불자(李佛子)'라 불렸다.

2년 뒤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는데, 형들과 함께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였고, 이이(李珥)의 철학적 입장은 이무위설(理無爲說)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였다. 저서에《항재문집》8권 4책이 있다.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院里里)에 그가 강학(講學)하던 광록초당(廣麓草堂)이 남아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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