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재

이세재

[ 李世載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동래부사로 있을 때는 일본과의 교역에 관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왜인들이 100년 이래의 두려운 부사라고 찬탄하였다.
출생-사망 1648 ~ 1706
본관 용인(龍仁)
지숙(持叔)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본관은 용인(龍仁)이고 자는 지숙(持叔)이며, 경상북도 칠곡(漆谷) 출신이다. 아버지는 나주목사 하악(河嶽)이며, 어머니는 인조 때 황해방어사를 지낸 이중로(李重老)의 딸이다. 1682년(숙종 8)에 사마시에 입격하고, 1694년(숙종 2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전설사별검(典設司別檢)·의금부도사·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감찰·공조좌랑·황주판관·남원현감·성균관직강·병조좌랑·병조정랑·시강원사서·문학·지평·정언·경기도도사·동래부사, 병조·예조·호조·형조의 참의, 경상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03년 한성우윤이 되고, 이어 대사간·도승지·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1705년 진주사(陳奏使)의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동래부사로 있을 때는 일본과의 교역에 관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왜인들이 100년 이래의 두려운 부사라고 찬탄하였고, 쓰시마섬도주[對馬島主] 소요시카타[宗義方]가 재판차왜(裁判差倭)를 보내와, 울릉도가 조선 영토이므로 다시는 침월(侵越)이 없을 것임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는 당쟁의 폐해를 우려하여 당론을 일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좌의정을 지내고 노론 정객으로 활약하던 친족 이세백(李世白)도 매사를 그에게 물어보고 행하였다고 한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