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길상

안길상

[ 安吉祥 ]

요약 고려 후기의 관리이다. 1347년 정치도감의 녹사가 되어 활약하였으나, 정동행성의 이문 윤계종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은폐하려다가 쫓겨났다. 1350년 지평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충정왕이 폐위되자 사직하였다. 1377년 판전객시사로서 금적사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왜구의 단속을 요청하다가 그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출생-사망 ? ~ 1380
본관 광주(廣州)
별칭 안길상(安吉常)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안길상(安吉常)이라고도 나와 있다.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1347년(충목왕 3) 나라의 개혁을 위하여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었을 때 녹사(錄事)가 되어 활약하였다. 이때 안렴사로부터 정동행성의 이문(理問) 윤계종(尹繼宗)이 이천 향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예전에 윤계종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 이를 은폐하려다가 정치도감의 판사인 왕후(王煦)와 김영돈(金永旽)에게 뺨을 맞고 쫓겨났다.

1350년(충정왕 2)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충정왕이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자 사직하였다. 공민왕 때는 은거하여 충정왕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가 공민왕 말년에야 지방관으로 부임하였다. 1377년(우왕 3)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로서 금적사(禁賊使)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왜구의 단속을 요청하다가 그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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