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파

오파

[ Offa of Mercia ]

요약 머시아의 왕 애설볼드가 암살 당한 후 혼란한 틈을 타 정권을 잡았다. 757년 애설볼드의 아들 베오른래드를 폐위시키고 머시아의 왕이 되었다. 이후 그는 주변국과 잉글랜드 남부 지역을 통합하기 시작하였다. 오파의 치세아래 잉글랜드 남부는 강한 정치적 통합을 이루었고 큰 번영을 누렸다. (재위 757~796)  
출생-사망 ? ~ 796
국적/왕조 영국
재위기간 757년 ~ 796년

머시아(Mercia) 왕가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757년 오파의 친척인 머시아(Mercia)의 왕 애설볼드(Aethelbald, ?~757, 재위 716~757)가 경호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왕위는 곧바로 애설볼드의 아들 베오른래드(Beornred of Mercia, ?~?)에게 계승되었다. 하지만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오파는 상황의 혼란스러움을 이용해 머시아 왕국의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는 베오른래드를 폐위시키고 머시아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잉글랜드 여러 지방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760년경 그는 주변에 있던 작은 왕국들을 머시아로 복속시켰다. 770년 이후에는 잉글랜드 남부에 있던 왕국들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이와 같은 오파의 강력한 통치와 영토 통합 아래 잉글랜드 남부는 머시아 왕국을 중심으로 이전과 비교되지 않는 굳건한 정치적 통합을 이루었다.

789년경 오파는 자신의 딸을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과 결혼 시키는 문제로 카롤루스 대제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혼약은 파기되었고 이 갈등으로 인해 머시아와 프랑크 왕국 사이의 교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하지만 796년 새롭게 체결된 상업조약으로 인해 두 왕국 사이의 교역은 재개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교회와 갈등을 겪기도 했는데 특히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 얀버트(Jaenbert, 재임 766~791)와 사이가 나빴다. 오파는 교황 아드리아누스 1세(Pope Adrian I, 재임 772~795)를 설득해 캔터베리 대주교를 둘로 나누어 리치필드(Lichfield) 교구를 신설했다. 이 일로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한은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796년 7월에 죽었다. 그가 죽은 후 왕국은 그의 아들 에그프리스(Ecgfrith, ?~796)에게 계승되었다. 하지만 그해 12월에 에그프리스가 죽어 왕국은 곧바로 켄울프(Coenwulf of Mercia, ?~821)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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