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무코노 구로마로

다카무코노 구로마로

[ 高向玄理 ]

요약 일본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의 학자로 고토쿠[孝徳]왕에게 국박사(國博士)로 임명되어 649년 팔성백관제(八省百官制)를 입안(立案)하는 등 다이카개신[大化改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출생-사망 ? ~ 654
국적 일본
활동분야 정치
시대 아스카시대[飛鳥時代]

일본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38~710]의 학자로 대륙에서 건너온 (渡來人)의 후손이다. 다카무코씨[高向氏]는 중국 삼국시대 (魏, 220~266)의 무제(武帝) (曹操, 155~220)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고토쿠[孝徳, 재위 645~654]왕의 재위기에 이루어진 다이카개신[大化改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는 스이코[推古, 재위 593~628] 때인 608년(推古 16년)에 견사(遣隋使)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 ?~?]를 따라 파견된 8명의 유학생(留學生)의 하나로 중국의 수(隋, 581~618)로 건너갔다. 그는 32년 동안 중국에 머무르며 학문을 익혔고, [舒明, 재위 629~641] 때인 640년(舒明 12년)에 함께 파견되었던 학승(學僧) 미나부치노 쇼안[南淵請安, ?~?]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는 (唐, 618~907) (太宗, 재위 626~649)의 이른바 ‘정관(貞觀)의 치(治)’를 지켜보면서 익힌 새로운 지식과 견문(見聞)을 일본 사회에 전파하여 나카노오에황자[中大兄皇子, 38대 天智天皇, 626~672] 등이 적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645년 7월 10일(皇極 4년 6월 12일), 나카노오에황자[中大兄皇子]는 나카토미 노 가마타리[中臣鎌足, 614~669] 등과 함께 ‘을사(乙巳)의 변(變)’이라 불리는 정변(政變)을 일으켜 조정(朝廷)에서 전횡(專橫)을 하던 소가씨[蘇我氏] 일족(一族)을 주살(誅殺)하고, 고토쿠[孝徳, 재위 645~654]왕을 옹립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다이카[大化, 645~650]라는 (年號)를 제정하고,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를 수립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다이카[大化] 조정(朝廷)에서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는 함께 수(隋)로 파견되었던 유학승(留學僧) 출신의 민[旻, ? ~653]과 함께 국박사(國博士)로 임명되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가 646년에 견신라사(遣新羅使)로 신라(新羅)로 파견되어 이른바 ‘임나(任那)의 조(調)’의 폐지를 둘러싸고 교섭(交涉)을 하였고, 다음해인 647년에는 신라(新羅)의 김춘추(金春秋, 武烈王, 604~661)가 일본을 방문하여 인질로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649년 고토쿠[孝徳]의 명을 받아 민[旻]과 함께 팔성백관제(八省百官制)를 입안(立案)하여 관제(官制) 개혁(改革)을 추진하였고, 654년에는 3차 견당사(遣唐使)의 책임자인 압사(押使)로 당(唐)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당(唐)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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