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노 하마나리

후지와라 노 하마나리

[ Fujiwara no Hamanari , 藤原浜成(등원빈성) ]

요약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의 귀족(貴族)이자 가인(歌人)으로, 772년 중국의 시론(詩論)을 일본의 전통 정형시인 와카[和歌]에 적용하여 을 저술하였다.
국적 일본
활동분야 문학
시대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의 귀족(貴族)이자 가인(歌人, 노래를 부르거나 짓는 사람)으로, [天智, 재위 668~672] 때의 총신(寵臣)으로 [大化改新]을 주도한 후지와라 노 가마타리[藤原鎌足, 614~669]의 증손(曾孫)이다. 772년(寶龜 2년)에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의 한시(漢詩) 이론(理論)을 일본의 전통 정형시인 단카[短歌]에 적용하여 와카[和歌]의 이론화를 꾀한 <가경표식(歌經標式)>을 저술하여 제49대 고닌[光仁, 재위 770~781]왕에게 바쳤다. <가경표식(歌經標式)>은 중국어에 기반한 한시(漢詩)의 시론(詩論)을 일본어에 기반한 와카[和歌]에 적용하여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랜 가론서(歌論書)로서의 의의를 지니며, 이론적 체계화를 도모하여 와카[和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후지와라 노 하마나리[藤原浜成]는 종삼위(從三位) 참의(参議)까지 올랐고, 간무천황[桓武天皇, 재위 781~806]이 즉위한 781년에는 사이카이도[西海道]의 9국(國) 2도(道)의 외교(外交)와 방위(防衛)를 책임지는 대재수(大宰帥)가 되었다.

그는 덴무[天武, 재위 673~686]의 증손(曾孫)인 히카미 노 가와쓰구[氷上川繼, ?~?]에게 딸을 시집보냈는데, 782년 사위인 히카미 노 가와쓰구[氷上川繼]가 모반(謀反)의 혐의로 유배되자 그에 연좌(連坐)되어 좌천되었다. 그는 태재부(太宰府)의 부사령관(副司令官)인 대재원외수(大宰員外帥)가 되어 [九州]의 지쿠젠국[筑前國, 지금의 후쿠오카 서부]으로 좌천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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