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메이

겐메이

[ Genmei Tenno , 元明(원명) ]

요약 일본의 제43대 왕으로 710년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遷都)하여 나라시대[奈良時代]를 열었으며 율령정치(律令政治)를 발달시켰다. (재위 707~715)
출생-사망 661 ~ 721
국적/왕조 일본
재위기간 707년 ~ 715년
본명 아베[阿陪 혹은 阿閇]
시대 나라시대[奈良時代]
별칭 아베황녀[阿陪皇女]
활동분야 정치

일본의 제43대 왕으로 이름[名]은 아베[阿陪 혹은 阿閇]로 즉위 전까지 아베황녀[阿陪皇女]라고 불렸다. 38대 덴지[天智, 재위 668~672]의 제4황녀(皇女)이며, 41대 지토[持統, 재위, 686~697]의 이복(異腹) 동생이다. 679년에 40대 [天武]와 지토[持統]의 아들인 구사카베황자[草壁皇子, 662~689]와 결혼하여 히타카황녀[氷高皇女, 680~748, 44대 元正天皇]와 가루황자[珂瑠皇子, 683~707, 42대 文武天皇], 기비황녀[吉備皇女, ?~729]를 낳았다. 686년 덴무[天武]왕이 죽은 뒤 구사카베황자[草壁皇子]는 황태자(皇太子)가 되었으나, 황위에 오르지 못하고 689년에 죽었다. 그 뒤 구사카베[草壁]의 어머니인 지토[持統]가 왕위에 올랐다가, 697년 손자인 가루황자[珂瑠皇子]에게 양위하여 42대 [文武, 재위 697~707]왕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몬무(文武)왕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아들인 오비토황자[首皇子, 701~756, 45대 聖武天皇]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할머니인 아베황녀[阿陪皇女]가 707년 8월 18일(慶雲 4년 7월 17일)에 43대 겐메이[元明天皇]왕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겐메이[元明]왕은 황후(皇后)가 아니었으면서 왕이 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겐메이[元明]왕은 몬무(文武)왕의 재위기에 대보율령(大寶律令)의 제정에 참여했던 후지와라 노 후히토[藤原不比等, 659~720]를 중용하여 율령정치(律令政治)를 발달시켰다. 708년 (年號)를 화동(和銅, 708~715)으로 바꾸었으며, 당(唐)의 개원통보(開元通寶)를 본떠 와도카이친[和同開珍]을 주조(鑄造)하였다. 와도카이친[和同開珍]은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流通貨幣)로 평가된다. 또한 710년에는 후지와라쿄[藤原京, 지금의 奈良縣 橿原市]에서 헤이조쿄[平城京, 지금의 奈良縣 奈良市]로 천도(遷都)하여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를 열었다. 712년에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 호족(豪族)이나 사원(寺院)의 지나친 전답(田畓) 소유를 금지하였고, 각종 고리대(高利貸) 채무를 탕감(蕩減)해 주었다. 또한 양잠업(養蠶業)과 방직업(紡織業)을 장려하였으며, 715년에는 향리제(郷里制)를 실시하였다.

겐메이[元明]왕은 적 정치체제의 정비와 함께 역사서와 지리지의 편찬에도 힘썼다. 711년 오노 야스마로[太安萬侶, ?~723]에게 히에다노 아레[稗田阿礼, ?~?]가 암송(暗誦)하고 있는 <제기(帝紀)>와 <구사(舊辞)>를 사서(史書)로 편찬하라고 명하여, 712년 상(上), 중(中), 하(下) 3권(巻)으로 된 <고사기(古事記)>를 완성하였다. <고사기(古事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서(歴史書)이다. 713에는 지방 각국에 산물(産物)이나 토지의 비옥도, 지명의 기원, 전래되는 기문이사(奇聞異事)와 세시풍속(歲時風俗) 등을 기록한 지리지(地理志)인 <풍토기(風土記)>의 편찬을 명했다.

겐메이[元明]왕은 715년 10월 3일(和銅 8년 9월 2일) 손자인 오비토황자[首皇子]가 아직 어리다며 딸인 히타카황녀[氷高皇女]에 양위하였고, 44대 겐쇼[元正, 재위 715~724]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721년 12월 29일(養老 5년 12월 7일)에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유명(遺命)을 남기고 죽었다. 시호(諡號)는 ‘일본근자천진어대풍국성희천황(日本根子天津御代豊國成姫天皇, やまとねこあまつみよとよくになりひめのすめらみこ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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