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복거

덕산복거

[ 德山卜居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曺植)이 지은 시이다.

春山底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사)
銀河十里喫有餘(은하십리끽유여)

봄산 아래쪽엔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천제 사는 곳과 가까운 천왕봉만 좋아라.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겠냐고?
은하수처럼 십리 흐르는 물 마시고도 남으리.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제목은 '덕산에 터를 잡고'라는 뜻이다. 덕산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嶺南) 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南冥) 조식이 만년에 거주하던 곳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 있다. 조식은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학문에만 정진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일가를 이루었다. 1561년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덕산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사망할 때까지 살면서 강학(講學)에 힘썼다.

이 시는 덕산에 거주할 곳을 정하고 지은 작품으로서 상제가 사는 천왕봉에 가까이 다가가 천리(天理)를 받들겠다는 자세와 명리를 떠나 안빈낙도하는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산천재의 네 기둥에 한 구절씩 주련(柱聯)으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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