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슌

스슌

[ Sushun Tenno , 崇峻(숭준) ]

요약 일본의 제32대 왕으로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그를 견제하려다가 살해되었다. (재위 587~592)
출생-사망 ? ~ 592
국적/왕조 일본
재위기간 587년 ~ 592년
본명 하쓰세베[泊瀬部]
시대 아스카시대[飛鳥時代]
별칭 하쓰세베황자[泊瀬部皇子]
활동분야 정치

일본의 제32대 왕으로 이름[諱]은 하쓰세베[泊瀬部]로 즉위하기 전에는 하쓰세베황자[泊瀬部皇子]로 불렸다. 시호(諡號)를 따서 하쓰세베노와카사사키[長谷部若雀], 하쓰세베[長谷部]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장곡부약작존(長谷部若雀尊), <고사기(古事記)>에는 장곡부약작명(長谷部若雀命)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스슌[崇峻]은 29대 긴메이[欽明, 재위 539~571]의 제12황자(皇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 506?~570]의 딸인 소가노 오아네노키미[蘇我小姉君]이다. 긴메이[欽明]의 자녀(子女)인 30대 비다쓰[敏達, 재위 572~585], 31대 요메이[用明, 재위 585~587], 33대 스이코[推古, 재위 593~628]왕과 이복형제 사이이다. 오토모노 무라지누카테[大伴連糠手]의 딸인 고테코[小手子]를 왕비로 맞이하여 하치코황자[蜂子皇子]와 니시키테황녀[錦代皇女] 등 2명의 자녀(子女)를 두었다.

587년 5월 21일(用明 2년 4월 9일) 요메이[用明]가 죽은 뒤 조정의 실권과 불교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모노노베씨[物部氏]와 소가씨[蘇我氏]의 양대 호족(豪族)의 대립은 더욱 격화하였다. 대련(大連)인 모노노베 노 모리야[物部守屋, ?~587]는 요메이[用明]의 동생인 아나호베황자[穴穂部皇子, ?~587]를 으로 세우려 했으나, 대신(大臣)인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551~626]는 비다쓰[敏達]의 아내였던 누카타베황녀[額田部皇女, 33대 推古天皇]의 조칙(詔勅)을 받아 아나호베황자[穴穂部皇子]의 궁을 포위하여 살해하였다. 그리고 아나호베황자[穴穂部皇子]의 동생인 하쓰세베황자[泊瀬部皇子]를 32대 스슌[崇峻, 재위 587~592]왕으로 옹립하고, 호족(豪族)들을 이끌고 가와치국[河内國]으로 쳐들어가 모노노베 노 모리야[物部守屋]를 살해하였다. 그 뒤 모노노베[物部] 씨족(氏族)은 영지(領地)와 노예를 빼앗기고 몰락하였다.

스슌[崇峻]은 587년 9월 9일(用明 2년 8월 2일)에 구라하시노시바카키궁[倉梯柴垣宮, 지금의 奈良縣 櫻井市]에서 즉위하였는데, 폐불파(廢佛派)인 모노노베씨[物部氏]가 몰락하면서 [法隆寺]나 시텐노사[四天王寺]의 건립을 시작하는 등 적극적인 숭불정책(崇佛政策)을 펼쳤다. 그러나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소가씨[蘇我氏]의 전횡(專橫)이 나타나면서 점차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갈등을 빚었다. 592년 스슌[崇峻]은 헌상받은 멧돼지를 칼로 찌르며 언젠가는 멧돼지의 목처럼 증오하는 사람을 칼로 벨 것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를 전해 들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는 592년 12월 12일(崇峻 5년 11월 3일) 의식(儀式)에 참석한 스슌[崇峻]을 야마토노아야 노 코마[東漢駒, ?~592]를 시켜 살해하였다. 그리고 다음 달인 593년 1월 15일(崇峻 5년 12월 8일) 30대 비다쓰[敏達]의 아내였던 누카타베황녀[額田部皇女]를 33대 스이코[推古]왕으로 세웠다.

왕이 암살(暗殺)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스슌[崇峻]은 공식 기록으로는 일본에서 신하에게 살해된 유일한 왕이다. 그는 살해된 날 장례(葬禮)가 치러져 능묘(陵墓)와 능호(陵戶)도 정해지지 않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스슌[崇峻]을 구라하시[倉梯岡]에 장례 치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근거로 1889년(明治 22년)에 구라하시노시바카키궁[倉梯柴垣宮]이 있던 [奈良縣] 사쿠라이시[櫻井市]에서 스슌[崇峻]의 위패(位牌)를 두고 있던 곤부쿠사[金福寺]가 그의 능지(陵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쿠라이시[櫻井市] 구라하시[倉橋]에 있는 적판천왕산고분(赤坂天王山古墳)이 스슌[崇峻]의 능묘(陵墓)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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