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양 원창거

구이양 원창거

[ 貴陽 文昌閣(귀양문창각) ]

요약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구이양시[貴陽市] 동문의 월성(月城) 위에 있는 누각.

원창거[文昌閣]은 과거 중국에서 문학적 기풍을 진작하고 교육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한 누각으로서 각지에서 볼 수 있다. 구이양의 원창거는 명나라 만력제(萬曆帝) 때인 1589년 건립되었고,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인 1669년 재건되었다. 이후에도 옹정제(雍正帝)·가경제(嘉慶帝)·도광제(道光帝)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복구작업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다.

넓게는 사합원(四合院) 구조에 본관과 양쪽의 배전(配殿), 배전과 연결된 재방(齋房)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구이저우 원창거라고 하면 본관을 지칭한다. 본관은 3층 보탑식(寶塔式) 목조 누각이며, 높이는 20m이다. 구각찬첨식(九角攢尖式) 지붕에는 반원통형 기와를 얹었다. 평면은 1층은 4각형이고, 2·3층은 9각형인데 9변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평면 배치는 중국 고대 건축물에서 보기 드물다.

들보의 구조도 독특하다. 3층의 금빛 기둥이 직접 땅에 내려져 있지 않고 옆의 들보로 받쳐져 있다. 3층의 처마기둥은 직접 2층에 끼워져 2층의 금빛 기둥이 되고, 이와 마찬가지로 2층의 금빛 기둥도 직접 땅에 내려지지 않고 옆의 들보로 받쳐져 있다. 2층 처마기둥은 직접 1층에 끼워져 1층의 금빛 기둥이 되어 누각의 기단에 박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누각의 공간을 확대할 뿐 아니라 위가 작고 아래가 큰 보탑 모양을 이루어 누각의 안정감을 돋보이게 한다.

1층의 두공(斗拱)은 2겹으로 공포를 끼워 넣은 삽공(揷拱) 구조로 처마와 들보를 받치고 있다. 이 역시 중국에서는 오래 전에 사용되었던 방식으로서 매우 보기 드문 것이다. 이밖에 누각의 문과 창문 등에는 채색화가 그려져 있으며, 작체(雀替;서까래와 기둥의 교차점에 받침목이나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구조물)에도 아름다운 도안이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외관이 특이하고 지방의 특색이 짙게 배어 있는 구이저우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조항목

,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