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현

신응현

[ 申應顯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언로의 개방과 임금에게 버림받은 인재의 재등용 등의 시무책을 올렸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었고, 북관감진어사로 흉년이 든 함경도에 파견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예조참의에 올랐다.
출생-사망 1722 ~ 1798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동보(同甫)이며, 호는 우헌(愚軒)이다. 1752년(영조 2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54년 예문관검열, 1757년 사헌부장령 등을 지냈다. 다음해 언로(言路)의 개방과 임금에게 버림받은 인재의 재등용 등의 시무책(時務策)을 올렸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경상도 기장현(機張縣)으로 유배당하였다.

1760년 풀려나 1763년 사헌부장령, 다음해 사간원헌납, 1766년에 사간원사간이 되었다. 사간으로 있으면서 그는 1769년에 임금은 만기(萬機)를 두루 살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려 영조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사헌부집의로 있을 때, 왕세손(훗날의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사간원사간·경기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함경도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자 북관감진어사(北關監賑御史)로 파견되어 굶주린 백성 20여만 명을 구휼한 공으로 예조참의에 올랐다. 그 뒤 1778년 동부승지, 1781년 승정원우승지·대사간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791년 공조판서·사헌부대사헌을 지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시문집에《우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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