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화

박용화

[ 朴鏞和 ]

요약 조선 말기의 친일파 관리. 중추원찬의·임시외부대신사무·제실회계심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때 일본군을 인도하여 궁궐을 포위, 대포를 설치하였다.
출생-사망 1871 ~ 1907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초명은 명화(命和)이며, 자는 희문(希聞)이고, 호는 소하(韶荷)이다. 1882년(고종 19) 일본에 유학,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894년 외부주사에 임명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1900년 주일특명전권공사로 부임하였다. 1902년 철도원과 수륜원(水輪院) 감독을 지낸 것을 비롯하여 외부협판·철도원부총재·궁내부협판·서리대신사무(署理大臣事務)·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임시외부대신사무·제실회계심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때 구완희(具完喜) 등과 함께 일본군을 인도하여 궁궐을 포위, 대포를 설치하였다. 1907년 임시서리시종원경 겸 내대신사무에 올랐다. 나인영(羅寅永:대종교 창시자 나철의 본명)·오기호(吳基鎬)·김인식(金寅植) 등이 보낸 자객의 칼을 맞고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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