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락

신경락

[ 申景洛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의금부도사·사옹원직장·전생서주부·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고, 연기현감이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또 군기시정으로《선조실록》편수관이 되었다.
신경락 묘역

신경락 묘역

출생-사망 1556 ~ 1615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사중(士中)이며, 호는 송촌(松村)이다. 영의정 숙주(叔舟)의 5세손이며, 한성부서윤 단(端)의 아들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입격하여 성균관 유생(儒生)이 되었다. 1600년 유생의 소두(疏頭)가 되어 승려에게 관작(官爵) 제수를 하지 말 것과,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승장(僧將) 의엄(義嚴)의 횡포를 다스릴 것을 상소하여 조정을 시끄럽게 하였다.

그 뒤 성균관의 추천으로 의금부도사·사옹원직장·전생서주부·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고, 1604년 연기현감(燕岐縣監)이 되어 선정(善政)을 펼쳤다. 다음해에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609년(광해군 1) 군기시정(軍器寺正)으로《선조실록》편수관이 되었다. 이후 지평·장령·헌납·집의·동부승지 등을 거쳐, 1614년 홍주목사(洪州牧使)가 되었다.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高山洞)에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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