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징

송징

[ 宋徵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정철이 파면되었을 때, 신구소를 올렸다가 연좌되어 10년 정거령을 받았고, 고용후가 무고를 당하여 투옥되었을 때에는 신무소를 올렸다.
출생-사망 1564 ~ 1643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신지(信之)이며, 호는 율옹(栗翁)이다. 송정순(宋庭筍)의 문인이며, 정철(鄭澈)과 교유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91년(선조 24) 정철이 파출(罷黜)되었을 때, 신구소(伸救疏)를 올렸다가 연좌되어 10년 동안 정거령(停擧令)을 받았다.

또 고용후(高用厚)가 무고를 당하여 투옥되었을 때는 신무소(伸誣疏)를 올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순국한 고경명(高敬命) 3부자의 충효를 들어 용서해 줄 것을 청하였고, 1612년에는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성균관 유생으로 항소를 올렸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의병과 군수(軍需)를 모아 근왕(勤王)하려 했으나 이미 난이 평정되어 해산했다.

이 밖에도 형벌 및 부세(賦稅) 경감과 문교 진흥 등에 관한 정책을 건의하여 반영시켰다.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水北面)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시문집에 6대손 재일(在一), 이신(以新) 등이 1826년 편집, 간행한《율옹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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