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영

박찬영

[ 朴燦瑛 ]

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 입교하였으나, 박세채를 왕명으로 문묘에 종향하게 되자, 관재에서 나와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출생-사망 1736 ~ 1773

본관은 진원(珍原)이고 자는 형옥(泂玉), 호는 양동(陽洞)이며, 전라남도 고흥(高興)에서 태어났다. 노론계의 학자 김원행(金元行)의 문인(門人)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 입교하였다. 1764년 성균관 유생(儒生)들이 소청(疏廳)을 개설하고 송시열(宋時烈)을 효종의 묘정(廟庭)에 배향하려고 상소할 때 소두(疏頭)가 되었으나, 사학(四學) 유생이 먼저 시행하였으므로 이루지 못하였다.

곧이어 정승을 지낸 소론계의 학자 박세채(朴世采)를 왕명으로 문묘(文廟)에 종향(從享)하게 됨을 보고도 막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황윤석(黃胤錫)과 함께 관재(館齋)에서 나와 김원행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선영(先塋) 아래에 정자를 짖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저서에《양동유고》5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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