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성

박필성

[ 朴弼成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효종의 부마로, 사은사나 주청사로 여러 차례 청나라에 다녀와 외교 역량을 발휘하였으며, 장수를 하자 궤장이 하사되었다.
출생-사망 1652 ~ 1747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자는 사홍(士弘)이고 호는 설송재(雪松齋)이며,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1662년(현종 3) 효종의 딸 숙녕옹주(淑寧翁主)와 혼인하여 금평위(錦平尉)에 봉해졌으나, 1668년에 숙녕옹주가 종두(種痘)로 죽은 후에는 평생 홀로 지냈다.

숙종 때에는 1685년부터 1717년까지 네 차례나 사은사 또는 주청사(奏請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견문을 넓히고 외교 역량을 과시하였다. 영조 때에는 그의 장수(長壽)를 치하하여 1738년(영조 14)에 시(詩)를 내리고, 1741년에 90세의 수를 누리자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건의로 오언시(五言詩)와 궤장(几杖)을 내렸으며, 1746년에는 그를 우대하여 영릉도위(寧陵都尉)에 봉했다. 97세의 나이로 죽자 효행을 치하해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의 소령원(昭寧園) 입구에 있는 숙빈최씨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의 비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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