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말더듬이왕

루도비쿠스 말더듬이왕

[ Louis the Stammerer    ]

요약 카롤루스 대머리왕의 장남으로 그의 뒤를 이어 877년 서프랑크의 왕이 되었다. 몸이 약해 정치적 성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2년 후인 879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왕국은 그의 두 아들에 의해 공동 통치되었다.  
원어명 Ludovicus Balbus
출생-사망 846.11.1 ~ 879.4.9?
별칭 말더듬이 왕
국적 프랑크 왕국
활동분야 정치

카롤루스 대머리 왕(Carolus Calvus, CharlesⅡ the Bald, 823~877)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오를레앙 백작 오도 1세(Odo I, Count of Orléans)의 딸인 에르망트루드(Ermentrude)이다. 866년 동생 어린 카롤루스(Charles the Child, Carolus puer, 848?~866)의 뒤를 이어 지방을 물려받았다. 877년에는 아버지 카롤루스 대머리왕의 뒤를 이어 서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몸이 약해 왕이 된지 2년 만인 879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77년 12월 랭스의 주교로부터 축성을 받고 왕관을 썼다. 878년 9월에는 교황 (Pope John VIII)의 주도로 트로이에서 열린 두 번째 대관식에서 다시 왕관을 받았다. 교황은 한발 더 나아가 그를 기독교 제국을 수호하는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첫 번째 부인인 부르고뉴의 앙스가르데(Ansgarde of Burgundy) 사이에서 루이 3세(Louis III of France,863?~882) 와 샤를로망(Carloman II,866~884) 그리고 두 딸들을 두었다. 이후 교황의 설득으로 이혼을 한 그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아델라이데(Adelaide of Paris)와 재혼하였다. 이 두 번째 결혼에서 아들 카롤루스 단순왕(Carolus Simplex, Charles Ⅲ the Simple, 879~929)을 얻었으나 그 출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다정하고 단순한 성정을 가진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루도비쿠스 말더듬이왕의 대부분의 업적은 미완(未完)으로 남았다. 왕국 내 개혁을 위한 시도들이 기존 권력자들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한편 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건강악화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879년 4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왕국은 그의 두 아들 프랑스의 루이 3세와 샤를로망 2세에 의해 통치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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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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