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백충

민백충

[ 閔百忠 ]

요약 조선 말기의 학자.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부모를 잘 섬겼고,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청빈을 즐기면서 학문에 전념하여 그 실천에 힘썼다.
출생-사망 1835 ~ 1885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내서(乃恕), 호는 국파(菊坡)이며 경상도 산청(山淸)에서 태어났다. 효행으로 감찰(監察)에 추증된 수(銖)의 다섯 아들 중 넷째이다. 형제가 모두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부모를 잘 섬겼는데, 상(喪)을 당하여서는 3년을 하루같이 성(誠)과 예(禮)를 다하였다.

주변에서 천거(薦擧)하려 했으나 과거에 뜻이 없어 거절하고, 청빈을 즐기면서《소학》과《가례(家禮)》를 연구하여 실천에 힘썼다. 임헌회(任憲晦)·기정진(奇正鎭)을 흠모하였으나 직접 배울 기회는 없었다.

그의 다섯 형제가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세운 서재(書齋) 오의정(五宜亭)이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 있으며, 저서에 시문집《국파유고(菊坡遺稿)》2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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