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창

문계창

[ 文繼昌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06년 삼도경차관으로 있으면서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웠다. 1511년 거창현감으로 재직 중 5등급이나 뛰어넘어 창원부사로 발탁되었으나 탄핵을 받아 물러났다.
출생-사망 ? ~ 1522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무예에도 재주가 있었다.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06년(연산군 12) 삼도경차관(三道敬差官)으로 있으면서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웠다.

1511년(중종 6) 조정에서 창원부사 김협(金恊)이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능숙하나 군대를 지휘하는 데는 미숙하다 하여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때 그는 거창현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성희안(成希顔)이 그를 천거하여 5등급이나 뛰어넘어 창원부사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권세가에게 아부한 전력이 있으므로 탄핵을 받아 1개월 만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1515년(중종 10) 경성평사(鏡城評事)를 거쳐 1517년 지평(持平)을 역임하고 그해 12월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곡식과 의약과 서책을 구하여 군민들을 돌보았다. 1519년에는 함양군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경상좌도감사 이항(李沆)이 대사헌으로 영전할 때 아첨하는 시를 지어 사류(士類)의 비판을 받았다. 1522년(중종 17) 풍기군수로 재직 중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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