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집

남궁 집

[ 南宮鏶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헌·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 인물을 등용할 때 식견이 넓고 공정하며 도량이 밝은 자를 3정승에 앉히고, 재질과 기량이 적당한 자를 6조와 3사의 장으로 앉혀야 한다는 내용의 을 상소하였다. 문집으로 《삼졸와유고》가 있다.
출생-사망 1601 ~ 1668

본관은 함열(咸悅)이며, 자는 강중(剛仲)이고 호는 삼졸재(三拙齋)이다.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헌(大司憲)·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당쟁이 심하여져  폐해가 늘어나자, 1660년(현종 1) 당쟁을 비판하는 <붕당설 朋黨說>을 상소하였다.

주된 내용으로는 인물을 등용할 때 당파에 관계없이 식견이 넓고 공정하며 도량이 밝은 자를 3정승(三政丞)에 앉히고, 재질과 기량이 적당한 자를 6조와 3사의 장으로 삼음으로써, 용렬하고 비루한 자가 당파의 힘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집으로 《삼졸와유고 三拙窩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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