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

김련

[ 金連 ]

요약 고려 후기의 관인으로 병부시랑·형부상서 등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초에 경상도도지휘사가 되어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의 수리를 총감독하던 중 허리에 차고 있던 금어대가 떨어지는 꿈을 꾸고는 사퇴하였다. 뒤에 광정대부 첨의시랑찬성사를 지내던 중 치사하였다.
출생-사망 1214 ~ 1291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기지(器之), 시호는 양간(良簡)이다. 해양현(海陽縣 : 전라남도 광주의 옛이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내시(內侍)로서 문하녹사(門下錄事)를 겸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올랐으나 팔관회(八關會) 때 의범(儀範)을 잃은 죄로 파면되었다. 후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형부상서(刑部尙書) 등을 지내다가 충렬왕(忠烈王) 초에 경상도도지휘사(慶尙道都指揮使)가 되어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의 수리를 총감독하였다. 어느 날 허리에 차고 있던 금어대(金魚帶)가 떨어지는 꿈을 꾸고는 ‘내 몸에 계급이 떨어졌으니, 패전(敗戰)의 징후이다’하고는 스스로 사퇴를 청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이후 광정대부 첨의시랑찬성사를 지내던 중 치사(致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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