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김덕한

[ 金德漢 ]

요약 대한제국 때의 관인이다. 비서랑 재임시 강화부 정족산성사고에서 발생한 《인조실록》 분실사고의 책임을 지고 유배되었다. 그 후 태의원소경·궁내부특진관·봉상사제조·종묘서제조·의효전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국조보감》의 완성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4등에 태극장을 하사받았다.
출생-사망 ? ~ ?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형조판서 학진(鶴鎭)의 아들이다. 1894년(고종 31) 전시(殿試)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900년 5월 영희전영정모사도감도청(永禧殿影幀摹寫都監都廳)을 지냈으며, 7월에는 비서랑(秘書郎)에 올랐으나 강화부 정족산성사고에서 발생한 《인조실록》 분실사고의 책임을 지고 유배되었다. 1903년 유배에서 풀려나 태의원소경(太醫院小卿)·궁내부특진관·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종묘서제조(宗廟署提調)·의효전제조(懿孝殿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1908년 《국조보감 國朝寶鑑》의 편집에 참여하여 선사위원(繕寫委員)과 감인위원(監印委員)을 연이어 맡았다. 1909년 《국조보감》을 완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4등(敍勳四等)에 태극장(太極章)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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