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저우 한문공사

차오저우 한문공사

[ 潮洲 韓文公祠(조주한문공사) ]

요약 중국 광둥성[廣東省] 차오저우시[潮洲市] 동쪽의 비자산[筆架山] 서쪽 기슭에 있는 한유(韓愈)의 사당.

한문공(韓文公)은 당나라의 문인이자 사상가였던 한유이며, 문공은 그의 시호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세인들의 숭앙을 받았으며, 사후에 그의 고향과 관리로 재직하였던 지방에 그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는데 차오저우의 한문공사는 그중 대표적인 사당이라고 할 수 있다. 차오저우는 한유가 헌종(憲宗)이 불골(佛骨)을 모신 일에 대하여 〈간불골표(諫佛骨表)〉를 올려 부당함을 간언하였다가 좌천되어 자사(刺史)를 지낸 곳이다.

송나라 진종(眞宗) 때인 998년에서 1003년 사이에 창건된 이래 원·명 시대에 20여 차례의 복구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1680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재건되었고, 현대에 들어 1984년에도 복구사업이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사당은 2개의 정원으로 나뉘는데, 2번째 정원에 주 건물인 정전(正殿)이 높이 2.5m의 기단(基壇) 위에 놓여 있다. 정전 안에는 한유의 소상(塑像)을 중심으로 양옆에 한유의 증손자인 한상자(韓湘子)와 한유가 차오저우에서 발굴한 인재인 조덕(趙德)의 소상 등이 있다. 정전 앞에는 한유가 좌천당한 이유와 차오저우에서 공적을 쌓은 일을 묘사한 2개의 주련(柱聯)이 있다.

사당 안에는 36개의 비석이 있는데, 그중 한유를 존경하던 송나라의 (蘇東坡)가 쓴 〈조주창려백한문공묘비(潮州昌黎伯韓文公廟碑)〉와 명나라의 서모(徐瑁)가 쓴 〈조주창려묘비(潮州 昌黎廟碑)〉가 가장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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