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저우 유후사

류저우 유후사

[ 柳州 柳侯祠 ]

요약 중국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州] 류저우시[柳州市]에 있는 유종원(柳宗元)의 사당.

유후(柳侯)는 당나라의 시인 유종원을 가리킨다. 유종원은 류저우의 자사(刺史)를 지내면서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다. 이에 그가 사망한 지 3년 뒤인 821년 목종(穆宗) 때 사람들이 류저우의 나지묘(羅池廟)에 그의 신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이후 송나라 휘종(徽宗)이 유종원을 문혜후(文惠侯)에 추증하였으므로 나지묘를 유후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과 복구 작업이 반복되었으며, 현존하는 유후사는 1729년 청나라 (雍正帝) 때 재건된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부지면적은 1958㎡이며, 대문·중청(中廳)·후당(后堂)·장랑(長廊)·비랑(碑廊)·곁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은 원래 사당의 남쪽에 있었으나 나중에 동쪽에 문을 내고 헐산식(歇山式) 지붕을 얹었다. 이 월동문(月洞門)에는 현대 중국의 문인 [郭沫若]가 유후사(柳侯祠)라고 쓴 친필 현판이 걸려 있으며, 사당의 정문 역할을 한다. 3칸으로 이루어진 중청은 경산식(硬山式) 목조 건물로, 내부에 당나라 때 조성되었다는 2개의 석정(石井)이 있다. 주 건물인 후당도 3칸의 경산식 목조 건물이며, 안에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관복을 입고 손에는 붓을 쥐고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유종원의 소상(塑像)이 있다.

유후사에는 20여 점의 고대 비석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용성석각(龍城石刻)〉은 현존하는 유종원의 유일한 친필이다. 또 〈여자비(荔子碑)〉는 한유가 비문을 작성하고 가 글씨를 쓴 것으로 유종원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뛰어난 세 문인의 합작품이라하여 '삼절비(三絶碑)'라고도 부른다. 이밖에 주변에 유종원의 의관총(衣冠塚)과 사류헌(思柳軒)·나지(羅池)·감향정(柑香亭) 등 명승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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