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이즘

울트라이즘

[ Ultraist movement, Ultraism ]

요약 20세기 초 스페인 시인과 작가들에게서 유행했던 문예운동이다. 울트라이즘에 참여한 시인들은 기존의 틀에 박힌 구조나 과도한 미사여구(美辭麗句)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함축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를 짓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1920년대 중반부터 점차 쇠퇴했으나 이후 조형예술(造形藝術)과 조형 시(造形詩)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진다.
원어명 ultraísmo

(World War I, 1914~1918) 이후 스페인 문학에서 나타난 경향이다. 1918년 스페인의 수도 (Madrid)의 까페 콜로니얼(Cafe Colonial) 모임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까페 콜로니얼 모임은 시인이자 유명한 아방가르드(avant-garde) 문예 비평가 라파엘 깐시노스 아센스(Rafael Cansinos-Assens, 1882~1964) 주도로 이끌어졌던 시인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젊은 시인들은 시(詩)에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감행하였으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다.  

울트라이즘(Ultraism)은 1919년 시인 길레르모 드 토레(Guillermo de Torre, 1900~1971)를 기점으로 헤라르도 디에고(Gerardo Diego,1896~1987), 보르헤스 (Borges, Jorge Luis,1899~1986) 등 당대의 스페인 시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이후 많은 스페인 시인들의 공감과 참여로 울트라이즘은  점점 그 영향력을 높여갔다.  

특히 <그레시아(Grecia, 1919–20)>와 <울트라(Ultra, 1921–22)> 두 정기 간행 잡지가 이 문예운동의 주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울트라이즘(Ultraism) 문예 운동에 참여한 시인들의 작품 대부분이 이 두 잡지에 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잡지들의 종간(終刊)과 함께 스페인에서 울트라이즘(Ultraism)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울트라이즘은 19세기말 스페인 시문학에서 유행하던 전통적인 모더니즘(Modernism)에 대항해서 나온 문예운동이었다. 따라서 이성(理性)에 너무 무게를 둔 전통적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감각적인 영역과 이미지를 중시한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전개된 미래주의(futurism), 다다이즘(dadaism) 그리고 프랑스의 초현실주의(surrealism)와 그 길을 같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울트라이즘은 무리한 모호함이나 감상주의는 피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울트라이즘은 미의식에 변화를 일으켰으나 무의식에 깊게 접근한 초현실주의 같은 과도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문학에서의 울트라이즘 문예 운동은 '자유로운 시작(詩作) 방법'으로 여겨졌다. 시인들은 기존 시문학에서 내려오던 전통적이고 틀에 박힌 형식들과 언어를 거부하였다. 즉 그동안 내려오던 시문학의 복잡한 운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극단주의 경향에 따라 쓰인 시들은 장식적인 어구들과 부연 설명 등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그 대신 대담한 묘사와 을 주로 사용했다. 이는 이 문예운동이 19세기 프랑스를 휩쓸었던 고답파(高踏派, Parnassiens)와 상징주의(Symbolists)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트라이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운율을 아예 제거하거나 종이에 그림처럼 글자를 배치한 시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이후에 조형예술(造形藝術, Plastic arts)과 조형 시(造形詩, Plastic Poetry)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보르헤스(Borges, Jorge Luis)는 1921년 (Buenos Aires)에서 간행 (刊行)된 노소트로스(Nosotros) 잡지에서 울트라이즘 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울트라이즘은 기본적인 은유를 위하여 나머지 서정적인 요소는 축소해야 하며 쓸모없는 부분은 삭제해야 한다. 장식이나 신앙고백(confessionalism), 부연설명, 설교, 무리한 모호함도 피해야 한다. 두세 개의 이미지는 하나로 합쳐져서 그 연상 작용의 폭을 넓혀야 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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