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훈

고원훈

[ 高元勳 ]

요약 일제강점기의 친일정치인이다. 조선체육회 회장, 보성전문학교 교장 등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여러 강연회를 통하여 내선일체와 창씨개명 등 일제의 정책에 부응하는 강연을 하였으며, 흥아보국단·연성보국단 등 친일단체에서 활약하였다.
출생-사망 1881.3 ~ ?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191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1911년 조선총독부 경부(警部)를 거쳐 1913년 보성전문학교 교수, 1922년에는 교장이 되었다. 한편 1921년에는 조선체육회 회장, 1924년에는 중추원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이후 전라남도를 비롯한 5개도의 참여관을 지내고 1932년에는 전라북도 도지사가 되었다. 1937년에는 경상북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도(皇道)의 실천’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다음해 7월에는 경성에서 열린 시국대책강연회에서 ‘일본의 수호신이 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1940년 10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와 연성부(鍊成部) 연성위원 등의 직책을 맡았으며, 다음해에는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의 상임위원이 되고, 이어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을 결성하여 부단장을 맡았다. 그즈음 창씨개명을 권유하는 강연을 하면서 스스로도 성을 고원(高元), 이름을 훈(勳)으로 고쳤다. 1945년 2월에는 야마모토동맹[大和同盟], 같은 해 6월에는 대의당(大義黨)을 조직하여 중책을 맡았다. 또한 일본군의 전쟁에 사용할 비행기를 만드는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 취체역을 맡았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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