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필

이광필

[ 李光弼 ]

요약 중국 당(唐) 숙종(肅宗)과 대종(代宗) 때의 장수(將帥)로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출생-사망 708 ~ 764
무목(武穆)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정치

시호(諡號)는 무목(武穆)이며 영주(營州) 류성(柳城, 지금의 遼寧省 朝陽) 출신으로 거란인(契丹人)이다. (則天武后, 624~705) 때 거란(契丹) 부족의 족장(族長)이었던 아버지 이해락(李楷洛)이 당(唐)에 복속(服屬)하였고, 아버지가 죽은 뒤 이광필(李光弼)이 관위(官位)를 계승하였다.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곽자의(郭子儀, 697~781)와 함께 ‘이곽(李郭)’이라고 불리며 명장(名將)으로 이름을 떨쳤다.

755년(天寶 14년) 안녹산(安祿山, 703~757)이 반란을 일으켜 [洛陽]으로 진격하자, 이광필(李光弼)은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곽자의(郭子儀, 697~781)와 함께 인산[陰山]에 방어선을 치고 의병을 일으킨 상산(常山, 지금의 河北省 正定)의 태수(太守) (顔杲卿, 692~756)을 지원하며 반군의 배후를 위협하였다. 756년 이광필(李光弼)은 곽자의(郭子儀)의 추천으로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가 되었으며, 곽자의(郭子儀) 등과 함께 상산(常山)에서 사사명(史思明, 703~761)이 이끈 반군을 크게 격파하여 허베이[河北] 일대를 수복(收復)하였다. 그리고 757년에는 타이위안[太原]에서 반군의 포위 공격을 물리치는 전공(戰功)을 세웠다.

이광필은 758년 곽자의(郭子儀)가 (宦官) 어조은(魚朝恩, 721~770)의 모함으로 지휘권을 빼앗기고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으로 소환되자, 그를 대신해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와 천하병마부원수(天下兵馬副元帥)가 되었다. 하지만 760년, 황제의 명령으로 무리하게 뤄양[洛陽]을 공격하다 망산(邙山)에서 반군에 크게 패하였다. 762년 (肅宗, 재위 756~762)이 죽고 (代宗, 재위 762~779)이 즉위한 뒤에는 조정(朝廷)의 권력을 장악한 환관(宦官) 정원진(程元振, ?~764)의 견제를 받다 병사(病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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