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리

입암리

[ 立岩里 ]

요약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에 있는 리(里).
입암리 농공단지

입암리 농공단지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의 군사와 백성들이 모여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신라군과 싸우던 곳이다. 마을 입구에 높이 5m에 이르는 바위가 서쪽 산자락 전체를 차지하며 서 있어 '선바위' 또는 '입암(立岩)'이라 불렸고,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연산군 두마면에 속하였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지동(柯枝洞)·산소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입암리로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논산시 두마면에 속하였으며, 2003년 9월 19일 새로 설치된 계룡시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른다.

자연마을로는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백성들이 모여 살던 수복동(壽福洞)과 약수터·가닥골·새터·음달말 등이 있다. 가닥골의 명칭은 까마귀골에서 변한 것으로 예로부터 외적이 침략하였을 때도 까마귀가 많은 곳을 꺼려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새터는 수복동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신대리(新垈里)라고도 하고, 음달말은 입암리의 응달쪽에 있는 마을로 음달리(陰達里)라고도 한다. 마을 북쪽의 구릉성 산지에서 마제석검이 수습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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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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