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디 운동

마흐디 운동

[ Mahdi movement ]

요약 무함마드 아마드(Muhammad Ahmad : 1844~1885)가 스스로를 마흐디(구세자)로 선언하고,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서구 지배로부터 벗어나 수단의 진정한 독립과 자유, 이슬람으로의 회기를 주장하며 이끌었던 이슬람 저항운동으로, 1881년부터 1899년까지 지속되었다.

마흐디 운동은 19세기 후반에 수단에서 서구와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민족주의 운동이다. 1880년대 후반에 수단은 형식적으로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일부였으나, 실제로는 의 케디브 정권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케디브 정권은 아랍민족적 성격을 지니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럽 열강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었다. 특히 1881년부터 이집트에서 우라비 혁명이 발발하자 케디브 정권은 이를 저지하는데 유럽 열강과 오스만투르크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며,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수단인들은 케디브 정권과의 관계 단절과 권력 축출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다민족으로 구성된 수단 사회의 힘을 한곳으로 결집시키고, 군소 지방 정권을 혁명과 봉기에 동참시키는 데에는 신화적인 지도자가 필요했다. 당시 수단의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이 수피주의(Sufism) 학자들이었으며 사회적으로 불안정하던 시기를 틈타고 신화적인 지도자, 즉 ‘마흐디(구세자)’의 등장에 대한 사상이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개혁주의적 인물인 알-삼마니야(al-Sammaniyya) 종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아마드가 1881년 6월 29일 스스로를 마흐디(구세자)로 선언하며, 수단 혁명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1844년 8월 12일 수단의 단깔라(Danqala)시(市)에서 15km 떨어진 라밥(Labab) 섬에서 출생한 무함마드 아마드는 스스로를 마흐디로 선언한 뒤, 추종자들과 함께 아바(Aba)섬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주한 사람들을 이끌고 혁명을 준비하며, 수단인들에게 자신이 마흐디임을 믿고, 새로운 종교사회의 건설에 동참하며, 유럽 열강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지배로부터 수단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고, 그들의 지배로부터 이슬람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도록 촉구하였다.

무함마드 아마드가 이끄는 마흐디군은 1881년 8월 2일 정부군에 대항하여 최초의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으며, 같은 해 11월 1일에 까디르 산에서 두 번째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 시기부터 무함마드 아마드는 카르툼 북부의 도시 움두르만(Umm Durmān)을 마흐디 국가의 수도로 정하고, 새로운 정부조직을 구성했으며, 우선 재무성을 설치하여 이슬람 법관과 무기담당관을 두었다. 각 는 4명의 정통 칼리프를 의미했으며, 자신은 예언자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혁명의 원동력을 수단 민중의 의식 개혁과 이슬람 신앙에서 찾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를 국가의 유일한 법으로 규정했으며, 순수한 이슬람을 타락시키는 술, 도박, 서양음식 등을 배척했다. 또한 노예와 주인이 같은 지위로 전투에 참여하는 등 평등주의를 강조했으며 이 점이 특히 무슬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마흐디군과 정부군 사이에 수 차례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수단 정부군은 유럽 군사 지도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영국 수비대장 (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이 마흐디 운동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고든은 마흐디군을 설득하고자 무함마드 아마드에게 카르디판(Kardifan) 지역의 통치권을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거절당했으며, 1885년 마흐디 추종자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후 마흐디군은 수단의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마흐디 운동을 이끌었던 무함마드 아마드는 1885년 6월 22일 티푸스로 사망해 움두르만에 묻혔다. 그의 사후에는, 수단 다르푸르(Darfur) 출신으로 마흐디군의 카르툼 점령을 이끈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Abdullah Ibn Muhammad, 1846~1899)가 마흐디 운동을 이끌었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해 수단 민족의 의식 개혁 운동으로 발전한 마흐디 운동은 15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일시적이나마 하나의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존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 마흐디 운동을 통해 수단은 처음으로 여러 부족들에 의한 분열된 통치 구조에서 통합된 로 넘어갈 수 있는 중앙집권 형태의 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1899년 9월 2일 마흐디 군대는 카라리(Karari) 전투에서 영국 식민주의 토벌대의 키체너(Kitchener) 장군에게 패했으며, 곧이어 수도 움두르만(Umm Durmān)도 함락되었다. 마흐디 운동의 지도자이자, 스스로를 마흐디로 선언했던 무함마드 아마드의 후계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가 1899년 11월 24일에 움다비크라트(Umm Dabikrat)에서 사망했으며, 이로써 마흐디 운동이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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