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은쿠룬지자

피에르 은쿠룬지자

[ Pierre Nkurunziza ]

요약 후투족 반군 지도자 출신의 부룬디 대통령으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집권하였다.
출생-사망 1964.12.08 ~ 2020.06.08
국적 부룬디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부룬디 부줌부라(Bujumbura)
시대 현대

1964년 부룬디의 수도 에서 태어나 북쪽 지방 에서 자랐다. 출신 아버지와 출신 어머니 사이의 6자녀 중 한 명으로, 스스로는 후투족이라 인식하였다. 국회의원과 주지사를 역임한 아버지는 1972년 종족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부룬디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1990년 졸업하였다. 이후 고등학교 교사이자 대학의 보조강사로 일하였다.

부룬디는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뒤 소수파 지배층인 투치족과 다수파 피지배층인 후투족(전체 인구의 약 85%)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93년 최초의 후투족 출신 대통령 멜콰이어 은다다예(Melchior Ndadaye)가 취임 3개월 만에 투치족 장교들에게 암살된 사건을 계기로 내전이 발발하였다. 내전이 한창이던 1995년 부룬디대학 강사로 재직하던 그는 캠퍼스에서 군대의 습격을 받은 후 후투족 망명자그룹 민주방위국민평의회(CNDD; National Council for the Defense of Democracy)의 무장단체인 민주방위전선(FDD; Forces for the Defense of Democracy)에 가입하였다. 1998년 법원은 그의 반란행위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1998년 CNDD-FDD 총서기에 임명되고, 2001년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2004년 의장에 재선되었다. 2003년 전쟁범죄에 대한 기소 면제를 받고, 후투족과 투치족이 참여하는 도미티엔 은다이제예(Domitien Ndayizeye) 대통령의 과도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하였다.

2005년 초 공식적으로 정당이 된 민주주의수호세력(CNDD-FDD)은 같은 해 7월 상·하원 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CNDD-FDD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그는 8월 상·하원이 선거인단으로 참여하여 실시한 대선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하여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 후 정치적 평화·안정을 위하여 후투족 60%, 투치족 40%의 비율로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반군단체인 민족해방군(FNL)과의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파벌주의, 부패, 폭력, 테러 등의 문제는 지속되었다.

2010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들이 정부의 부정선거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또 다시 단독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부룬디 헌법은 대통령 5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은쿠룬지자는 2015년 3선 도전을 선언하였다. 이에 격렬한 반정부시위로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쿠데타가 발생하였으나 불발되었다. 모든 야당은 대선 불참을 선언하였고, 국제사회는 거센 비난을 퍼부었지만 결국 출마를 강행하여 당선되었다. 정부군과 무장대원의 충돌, 시위로 인한 폭력사태, 인권탄압, 살인·체포·고문·납치·강간·투옥 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최소 1,200명이 사망하고 약 40만 명이 주변국으로 피신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집단학살, 인권유린 등 반인륜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창설된 (ICC)가 예비조사를 선언하자 2017년 부룬디는 ICC를 공식 탈퇴하였다.

2018년 여당은 은쿠룬지자 대통령에게 ‘영원한 최고 지도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이전 임기와 상관없이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장기집권 야욕에 헌법까지 바꾸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의외로 그는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2020년 대선에서 후계자인 퇴역장성 출신 에바리스트 은데이시미예(Evariste Ndayishimiye)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많은 이들은 퇴임 후에도 그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보았다. 2020년 6월 8일, 퇴임 약 2개월을 앞두고 심장발작으로 돌연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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